1. 화장품의 정의
1-1. Cosmetics(화장품, 化粧品)이란?
인체의 보이는 부분을 미화하여 얼굴 등 외부에 보이는 피부의 결점을 커버하여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피부, 모발 등의 감도를 유지하거나 체취를 감추고(데오드란트) 호감을 가지기 위해(향수) 사용하는 물질이다.
이런 화장품을 바르는 행위를 화장이라고 한다.
1-2. 화장(化粧)이란?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모습이 아름다워지기를 원하며 이것은 인간의 본능임과 동시에 동물과 구별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즉 인간이 스스로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게 곧 하나의 꾸밈이며, 화장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을 더 가꾸기 위해 화장과 화장품이 점점 발전해 왔다. 화장품의 법적 분류
영유아용, 목욕용, 인체 세정용, 눈 화장용, 방향용, 두발 염색용, 색조 화장용, 두발용, 손발톱용, 면도용, 기초화장용, 체취방지용, 체모 제거용 등으로 분류된다.
1-3. 사용 목적에 따른 분류
기초화장품, 바다 화장품, 기능성화장품, 메이크업 화장품, 모발 화장품, 방향 화장품 등으로 분류된다.
기초화장품은 얼굴 피부의 기초 기능을 보강하고 보호하는 화장품이고, 바다 화장품은 피부(몸)의 기초 기능을 보강·보호하는 화장품이고, 기능성화장품은 미백, 주름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자외선 차단의 기능을 가지는 화장품이며, 메이크업 화장품은 피부의 결점을 보완하거나 어필하기 위한 미적인 변화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한다.
2. 화장품의 유래
2-1. 화장품의 역사
기원전 3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화장품을 사용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와 이집트에서는 독성이 있는 수은이나 납이 포함된 화장품을 사용했었다. 클레오파트라의 경우 수은 중독으로 인한 얼굴의 괴사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중세에서는 교회 장로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많은 여성이 화장품을 계속해서 사용하였다. 중세 여성에게는 피부 빛을 창백하게(하얗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이를 위해 밀가루, 분필 등을 바르거나 피를 뽑아서 하얀 피부를 갖기를 원했다.
3. 화장품의 역사적 배경
3-1. 서양 화장의 역사
화장품 사용은 서양 역사에서 환영받지 못하였다. 19세기에 메이크업은 주로 매춘부들이 사용하였고, 빅토리아 여왕은 공개적으로 메이크업을 부적절하고 저속하여 배우들에게만 용인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1870년대에는 사교의 에티켓이 보다 엄격해져서 메이크업이 일반적으로 환영받지 못하였다. 19세기 여성들은 연약한 숙녀로 보이기를 선호하였는데, 이들은 자신을 약한 꽃에 비교하였고, 여성성과 섬세함을 강조했다. 그녀들은 창백하게 보이려 노력했고, 종종 아주 미약하게 연지를 볼에 사용하였으며, 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베라도 나를 사용하였다. 배우들에게만 메이크업이 허용되었고, 릴리 랭트리나 사라 베르나르와 같은 잘 알려진 미녀들만이 파우더를 바를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전 세계 대부분의 여성이 화장품을 사용하게 되었다.
3-2. 우리나라의 화장의 역사
우리나라의 화장은 초기에 미화 수단의 독립된 개념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주술의 개념 혹은 약학 및 의학의 일부로 인식되었다.
고대의 화장은 부의 편재와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하여 일부 계층에게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옛 선조들은 백분·향료 등을 맷돌에 갈아 체에 치고, 꽃잎을 압착시켜서 향수를 만들었고, 약을 만들 듯이 끓이거나 달여서 농축시켜 화장품을 만들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생 관리와 미화를 위한 화장품의 발전은 19세기 후반에 되어서야 체계화되고, 기업화는 20세기에서야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장품 외에 화장에 필요한 도구인 경대·거울·족집게 등을 총칭하여 장염이라 하였는데 장염에 포함되는 화장품은 코스메틱에 해당하는 연지·미북·머릿기름·백분 등이었다. 이 밖에도 피부의 때를 씻는 조두나 향수·향료 따위는 장염에 포함되지 않았다.
피부의 보호와 미백을 위한 남들과 다른 노력으로, 이미 삼국시대 초기에 남다른 미의식이 생성되어 화장술과 화장품이 발달하였었다. 화장 행위는 서양과는 달리 경멸하지 않았지만 발달하지 못해 매우 더디었다.
자신의 잉여 생산품을 팔거나 교환하는 장소로 시장이 이용되었는데, 생필품 외의 교역은 매우 미미하였으며, 화장품의 제조가 쉬웠으므로 대부분 자가 제조하였다. 향수는 향기 짙은 식물을 압착하여 만들었고, 백 분과 조두는 맷돌에 갈아 체에 쳐서 만들었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부족한 물품의 구입을 억제하고 생산품 위주로 생활하였기 때문에, 화장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을 자가 제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가 한정되었으므로 기술의 혁신이 없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조건으로 옛날 우리나라의 화장품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어서, 삼국시대의 백제와 신라의 화장품 제조 기술이 일본보다 우위였었다.
고려시대에는 향유가 수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일본에서 화장수(미안수) 제조 기술을 모방할 정도였었다. 그러나 오랜 통상수교 거부정책 끝에 문호 개방을 함으로써 많은 재래 산업이 쇠퇴한 것처럼 재래 화장품 산업도 쇠퇴하고 말았었다.
우리나라의 옛 화장품은 피부용 제품과 모발용 제품으로 나누어지고 그 중 피부용 제품은 모두(세정제), 미안수(화장수), 면역(크림), 분 백분·색분·볼연지·입술연지·미북(속눈썹용) 등이 있었다. 또한 얼굴을 곱게 하기 위하여 꿀 찌꺼기를 얼굴에 골고루 펴 발랐다가 몇 분 후에 떼어내는 팩도 있었다. (윤안향밀은 꿀 찌꺼기에 향을 가미한 것으로서 얼굴을 윤기 나게 하는 영양 크림과 흡사함)
그리고 모발용 제품으로 머릿기름, 밀기름, 염모제 등이 있었는데, 창포에 쑥을 넣어 함께 삶아 현대의 샴푸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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